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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의 [마의 산] 줄거리와 작품 배경

by rusalca 2023. 8. 30.

작가 토마스 만(1875년 ~ 1955년)

20세기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토마스 만은 1875년 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유한 사업가로 네덜란드영사를 지냈던 아버지와 예술가 기질이 다분한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습니다. 토마스 만은 그의 형이 작가였던 것처럼 어릴 때부터 작가가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1898년 첫 단편집인 〈키 작은 프리데만 씨〉를 출간하였고, 1901년 〈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작가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 장편 소설은 1929년에 토마스 만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토마스 만은 민주주의 정부를 옹호하는 강연 활동을 했고, 이후 미국으로 가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스위스 취리히로 거처를 옮겼으며, 그곳에서 1955년에 사망했지요. 〈마의 산〉, 〈토니어 크뢰거〉, 〈요셉과 그의 형제들〉, 〈파우스트 박사〉등 주인공의 진지하고 깊이 있는 성찰을 문학적으로 담고 있는 그의 작품은 20세기 독일 문학의 기념비적 성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마의 산의 줄거리

함부르크의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23세의 한스 카스토르프는 이종사촌인 요하임 침센을 병문안하기 위해 스위스 알프스의 다보스에 있는 결핵 요양소 베르그호프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자신도 결핵에 걸려 요양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죽음과 직면하게 된 한스는 결국 7년간 깊은 산속에서 투병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한스는 요양소의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오묘한 느낌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양소 내에 감도는 죽음의 공기에도 익숙해졌습니다. 요양 생활 중 한스는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지만, 특히 생명의 신비를 가르쳐 주는 원장 베랜스, 지성과 이성을 믿으며 미래를 낙관하는 이탈리아 출신의 인문주의자 세템브리니, 독재와 공산주의 사상을 따르도록 북돋우는 유대인 종교가 나프타, 신비한 러시아 부인 쇼샤 등으로부터 매우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러던 중 세템브리니는 점점 죽음에 익숙해져 가는 한스에게 평지에 내려가 제대로 된 삶을 찾으라고 충고하였고, 나프타는 병든 세계를 구제하기 위해 종교에 몸 바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세템브리니와 나프타는 의견 대립으로 결투하다 죽고, 한스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병도 낫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터로 떠났습니다. 요양소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을 통해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의 산 작품 배경

토마스 만의 아내 카챠 부인은 기관지염을 치료하기 위해 1912년 스위스의 다보스 요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토마스 만은 3주일 동안 아내 옆에서 극진히 간호하였지요. 이때 창작의 실마리를 떠올려 집필한 작품이 바로 〈마의 산〉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집필을 시작하고 12년이 지나서 야 출간되었어요. 집필 기간 동안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은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로 시작되어, 1918년 11월 11일 독일의 항복으로 끝난 세계적 규모의 전쟁이었습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이 뭉친 연합국과, 독일, 오스트리아 등이 뭉친 동맹국 이 중심이 되어 싸운 전쟁으로, 〈마의 산〉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마의 산〉을 막 집필하려고 했을 때, 토마스 만은 사실 단편을 쓰려고 계획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에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큰 충격을 받고, 이 전쟁 속에 숨겨져 있는 사회 문제와 인간의 비극 등을 다루게 되었습니다. 토마스 만은 장장 12년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하여 유럽 사회의 문제를 추적하는 방대한 장편을 썼습니다. 당시 세계는 9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몸살을 앓았고, 〈마의 산〉의 결말 역시 주인공인 한스 카스토르프가 병도 낫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에 참가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이는 인간은 '인류애' 라는 휴머니즘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